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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증강 등 한국 해군․해병대 발전에 기여한, 故 마이클 루시 美 해군대령 흉상
등록날짜 [ 2017년12월07일 16시27분 ]
 
 

 - 6․25전쟁 기간 중 한국해군사령관으로서 인천도서탈환작전, X-Ray작전 등 주요작전 기여
 - 2300톤급 호위함 도입 등 한국 해군 전력증강에 큰 공헌 



7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열린 美해군의 故 마이클 루시(Michael Joseph Luosey, 1912. 8.15. ~ 1998. 6.29.) 대령 흉상 제막식에서 정안호 해군사관학교장, 브래드 쿠퍼 주한 美 해군사령관 등 주요 내빈이 흉상 제막을 거행하고 있다.

[더코리아뉴스] 조현상 기자 = 해군은 7일 창원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6․25전쟁 중 유엔군 예하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한국해군사령관(CTG 95.7) 겸 한국해군고문단장으로서 6.25전쟁 승리와 한국 해군ㆍ해병대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미국 해군의 故 마이클 루시(Michael Joseph Luosey, 1912. 8.15. ~ 1998. 6.29.) 대령의 흉상 제막식 가졌다.
   
해군은 12월 7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6?25전쟁 중 유엔군 예하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한국해군사령관 겸 한국해군고문단장으로서 6.25전쟁 승리와 한국 해군ㆍ해병대 발전에 큰업적을 남긴 미국 해군의 故 마이클(Michael Joseph Luosey, 1912. 8.15. ~ 1998. 6.29.) 대령의 흉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루시 대령이 한국 해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 예하에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한국해군사령관 및 한국해군고문단장으로 임명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미극동해군사령부는 적군에 대한 정보수집 및 연해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부대인 한국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 해군을 유엔군 예하의 단일한 기동전대(TG 95.7)로 조직했다.  
  
1950년 7월 9일 중위 1명ㆍ사병 5명과 함께 항공편으로 부산에 도착한 루시 대령은 1952년 5월 31일까지 한국해군사령관과 한국해군고문단장을 맡았다. 
실제 한국 해군의 작전은 한국 해군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루시 대령은 부임 직후 38도선 이남 연안에서 북한군의 해상보급을 차단하는 한국 해군의 해상작전과 해병대 작전을 지휘하고 개전 초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유엔군 함정들에 대한 군수지원, 지상군과의 연락체계 구축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1950년 8월 중순 포항에서 국군 3사단이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해상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루시 대령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정부가 민간에 양도한 상륙함(LST) 4척을 어렵게 모아 해상철수작전을 도왔다. 당시 국군 3사단에 대한 함포지원을 담당한 미국 해군 제3순양함분대는 상륙함 전력이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 포경선이 예인하는 뗏목에 한국군 병력을 태우고 근해에서 다시 전투함으로 옮겨 철수하는 계획을 수립할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루시 대령이 지원한 상륙함 4척은 8월 16일 포항 독석리 해안에 도착해 국군 3사단 병력 9000여명, 경찰 1200여명, 민간인 노무자 1000여명, 차량 100여대를 무사히 철수시켰다.   
  
6․25전쟁 중 루시 대령의 가장 큰 공적은 무엇보다도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쟁기간 중 한국 해군의 염원이었던 2300톤급 호위함(PF), 어뢰정(PT), 구잠함(PC), 구잠정(PCS) 등의 전투함과 장비를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양도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한국 해군이 보유한 함정은 미국에서 구매한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450톤급) 등 전투함 4척, 경비정 1척, 소해정 25척 등 소형함정 36척에 불과했으나 전쟁기간 중 호위함을 비롯해 30척이 추가로 도입됐다.  

또한 루시 대령은 한국 해군본부를 통해 인천상륙작전 직전 한국 해군이 시행한 인천도서탈환작전, 첩보수집작전인 X-Ray작전 등 주요 작전을 지휘하고 인천상륙작전에 한국 해군과 해병대가 참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전쟁기간 중 한국 해군사관생도들을 연락장교 직책으로 미국 해군의 전투함에 편승시켜 함정운용술ㆍ전술 등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생도들이 3년간 정상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조치해 한국 해군의 인재양성에도 기여했다. 이외에도 전쟁 중 발생한 전쟁고아와 유가족, 부상 장병들의 구호를 위해 구호품 및 생필품을 지원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기간 중 루시 대령에게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과 공로훈장을 수여했으며, 미국 정부로부터도 금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1952년 5월 31일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난 루시 대령은 군수지원함 함장, 구축함전대장, 해상수송지원단장을 역임하고 1960년 전역했다. 미국 해군은 그에게 장성으로 명예진급해 전역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그 계급으로 실무에서 일할 수 없다면 진급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전역 이후에는 고향에서 공직에 종사했고 미국 적십자회장을 역임했다.  

한편 한ㆍ미 동맹과 한국 해군 발전에 기여한 루시 대령의 흉상은 흉상 80cm, 좌대 85cm 크기이며,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 1층 로비에 세워져 해군사관생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해군은 2012년부터 6․25전쟁 중 대한민국 수호와 해군 발전에 기여한 유엔군 현양사업을 전개해 2012년 알레이 버크 제독, 2014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을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 로비에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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