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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역사가 숨쉬는 숨은 보석 '홍예문'을 찾아서
등록날짜 [ 2019년05월24일 09시55분 ]
 춘향의 남원, 전라 천년 남원을 가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남원의 교룡산성, 지금은 유일하게 남은 산성의 홍예문, 하지만 이곳 만큼은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한 곳을 관광객이 둘러 보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더코리아뉴스] 하성인 기자 = '춘향'이는 진짜 살았을까.? 아니면 춘향이는 우리가 상상하는대로 미인이였을까.?

전라도 천년 그리고 춘향이 살았다는 남원 천년을 찾아 수도권 기자 몇몇과 남원을 찾았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 때문인지, 변사또의 고약한 심뽀라든지 요샛말로 하면 권력형 성(性) 스캔들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남원시는 지리적으로 전라남도·경상남도와 접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관계로 오래전 모 가수의 노래가락에서 느낄수 있을 만큼의 전라도와 경상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라도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룡산성 입구에 서 있는 동학혁명유적지 비(사진=하성인기자)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는 88고속도로, 순천-완주 고속도로 와 전라선 철도, 그리고 3개 국도노선(17, 19, 24호)이 통과하며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내륙의 관문이자 문화적·경제적 접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 3,120m.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 현재 문지(門址)·수구(水口)·옹성(甕城)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특히 이중에 남원시가 발벗고 나서서 자료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교룡산성'은 남원의 진산인 교룡산의 정상과 동쪽으로 형성된 계곡을 두른 포곡식(包曲式) 산성이다.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가 쌓았다고도 하며, 설인귀성(薛仁貴城)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 보다 휠씬 오래전 691년(신문왕 11)에 남원소경(南原小京)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 시대 말기에 백제가 축성하였다고 추측되기도 하나, 성 안에서는 오래된 유물이 채집되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며 또한 백제시대에 돌로 이런 성을 쌓았다는게 의문이 들기도 하다.

또 한가지 역사적 사실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둘레 1,125보(步)이고 군창(軍倉)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도 왜구에 대비한 입보피난처(入保避難處)로서 계속 중요시하였음을 알수 있다.

▲교룡산성 안에 있는 선국사 대웅전, 많은 역사의 아품을 담고 지금은 스님들의 불법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임진왜란 때에 승병장 처영(處英) 등이 수축하여 남원읍성과 함께 지키고자 하였던 곳이며, 그 뒤 계속 수축과 개축을 하면서 중요한 군사요새지로 유지되었음을 성 안에 남아 있는 기적비(紀蹟碑)들이 알려주고 있다.

성벽은 자연석이 아닌 잘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았으며, 동쪽 계곡부에 수구를 두고 옆에는 옹성을 갖춘 동문터가 남아 있다. 동문은 홍예(虹蜺 : 무지개모양의 문)를 이루었으나, 그 형식은 조선시대 후기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곳이 성터 임을 알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남원 교룡국민관광지에서 교룡산성을 오르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성문인 아치형의 홍예문을 통과, 언제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나라 산세 좋은 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막걸리 파전 도토리묵을 파는 가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들의 조상은 성주(城主)였을까? 성을 지키는 문지기였을까.? 어떤 권력(?)을 지녔기에 성안 초입에 터를 잡고 앉았으니...
▲현재 이곳에는 남원시에서 교룡산성에 대한 유적지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사진=하성인기자)

암튼 교룡산성은 말 그대로 산성이기 때문에 가파른 언덕배기를 따라 올라가니 성안에는 선국사가 있는데, 보통 절 이름에 '국(國)'자가 들어가는 사찰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역할을 담당해 온 것으로 선국사 역시 나라를 지켜낸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맞아 싸웠을 때나, 임진왜란 당시에는 군량미를 보관하는 등 큰 역할을 했으며, 동학 혁명때는 접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이 관군과 큰 접전이 있었던 역사적인 유적지 임에 틀림없지만 지금은 불법 수행도량으로 아픈 역사를 품고 있지만, 허물어진 성벽과 더불어 인적이 드문 깊은 숲에 홀로 고즈넉이 들어 앉아 있다.
▲산성 정상쯤에는 천도교 제1세 교조이신 대신사가 관의 탄압을 피했던 덕밀암인데, 천도교에서는 은적암이라 부르며 동학을 밝히는 논학문을 집필했던 곳으로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사진=하성인기자)


잘 다듬어진 돌들로 축조된 교룡산성의 입구를 지나 산성의 다른 성문을 찾기 위해 정상을 향하던 중 천도교 제1세 교조인 대신사(水雲-崔濟愚)께서 관의 탄압을 위해 은거했다는 암자터 팻말이 보였다. 원래 이곳은 덕밀암이라는 암자가 있던 곳인데, 최제우 대신사께서 은적암이라 부르며 동학을 밝히는 논학문(論學文)을 집필한 곳이라고 한다.

정상을 둘러 보고 내려오는 길목에 역사적인 사실과는 달리 너무나 작은 대웅전과 불사 뒷켠으로 최근 남원시에서는 교룡산성과 관련 유적지 발굴 작업을 하느라 많은 인부들이 땀을 흘리며 잡목을 제거 하고 있었다.

산사를 빠져 나오면서 되돌아 보니 대웅전에 걸려 있는 커다란 북과 백골(白骨)같은 보제루가 그 옛날 칼로서 혹은 죽창으로서 서로를 죽이면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허망했던 몸짓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남원의 숨은 보석이라는 교룡산성의 홍예문을 향하는 관광객들(사진=하성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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