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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서당', 백성을 향한 반계 유형원의 고뇌와 숨결이 숨어 있는 곳
등록날짜 [ 2020년01월03일 01시10분 ]
 전북 부안, 경자년 해맞이 따라 오늘날과 흡사한 조선 중기를 느끼다
 

▲전북 부안을 찾은 경자년 해맞이 투어단 일행이 실학의 비조인 반계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집필한 반계서당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더코리아뉴스] 하성인 기자 = 하성인 기자 = 실학(實學)-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것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 평범한 학문도 혼란한 시기 뛰어난 학자의 손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것은 사람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에 입각해서 완성된 성리학이였다는 것이다.

그런 성리학이 뒷방의 퇴물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나친 유교 사상에 얽메여 예(禮)를 중요시하다보니, 예(禮)의 끝판에 봉건사회가 나타나게 되고 이는 곧 모든 사람들을 양반과 천민으로 갈라 놓으며, 부(副)와 권력을 양반이 움켜쥐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계서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멀리 줄포만 생태공원이 보이는 이곳에서 유형원은 후배 양성과 학문을 연구하며 농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구제할 실학을 집대성하게 된다.(사진=하성인기자)

하지만,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쥔 양반들은 거센 외세의 바람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이 그져 니탓 네탓만하다보니 더욱 어려운 것은 백성이였다.

우리나라 조선 중기 모습이 어쪄면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면...? 틀린 말일까.

임진왜란, 병자 호란이 일어난지 400여년이 지난 지금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전북 부안군(부안군수 권익현)과 전북 관광마켓팅 종합지원센터(센터장 선윤숙) 주최로 수도권 소재 관광기자들과 블로거, 일반 시민들을 초청 '2019년 해넘이 해맞이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일행은 줄포만 생태공원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경자년 새해 일출을 감상한 뒤 줄포면 새마을부녀회가 마련한 떡국을 먹으며, 새해 덕담을 나눴다.

이어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위치한 반계서당을 찾아 실학의 비조(鼻祖:시조)인 반계 유형원이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을 칩거하면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한 반계서당을 찾았다.
▲전북 부안 해맞이 행사에 참석한 투어단 일행이 반계서당에서 포토 타임을 갖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유형원은 1622년 서울 소정릉동(오늘날의 정동) 외가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친 유흠이 광해군을 복위하려한다는 무고를 입고는 역적을 몰려 감옥에서 자결하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훗날 9대조인 유관의 사패지(賜牌地:왕이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땅)가 있는 이곳 부안으로 내려와 산자락에 '반계서당'을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 생활을 몰두 하면서 일종의 국가 개혁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저술한 책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死藏)되어 있다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등의 손에 의해서 세간에 알려지고 영조 때에 와서야 간행이 허락되었으며, 정조는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높이 평가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바탕으로 여겼다고 한다.
▲반계서당 앞에 세워진 정자에서 관광객들이 확 트인 벌판을 내려다 보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이후 유형원의 반계수록은 다산 정약용 등에 의해서 토지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 역사, 지리, 국방, 언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경자년을 맞아 모 방송국에서 국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갈등'을 꼽았는데, 이는 바로 부유층과 서민층, 진보와 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 곳곳에 갈등의 골이 깊어 지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반계 유형원이 국가 통치 기본을 저술했던 상황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어 투어단 일행은 반계서원을 나와 한마디로 원효대사가 해골 속의 물을 마시고는 깨달음을 얻어 원효굴이 있다는 개암사로 향했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변산(邊山) 기슭에 자리 잡은 개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말사로서, 634년에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
▲개암사 대웅보전, 뒤로 멀리 보이는 두개의 바위를 묘암과 개암이라 했던가.? 개암사를 둘러싸고 있는 곳에는 문왕이 쌓았다는 도성터가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사진=하성인기자)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676년에는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1314년 원감국사(圓鑑國師)는 조계산 송광사에서 이곳 원효방(元曉房:우금굴)으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서 절을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단청을 새로한 탓인지, 대웅보전 외부에 새겨진 용두와 봉황의 모습은 세련된 조각과는 달리 위엄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특히 뒤의 바위상을 배경으로 한 팔작지붕의 대웅전은 규모에 비해 민흘림으로 된 굵은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그 중 우주는 더욱 굵어 안정감을 주며 공포의 일부 조각이 힘있게 처리되어 장중한 외관을 구성하고 있다.

건물 내·외부의 용두 및 봉황 등의 조각과 불단 위의 화려한 닫집수법은 세련미를 표출하고 있지만, 최근 채색되었다는 단청때문인지, 웬지 위엄이 있어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개암사 대웅전은 외관이 장중하고 비례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수법과 내부공간은 화려한 장식에 치우쳐 있어 백제의 안정감, 조선 중기의 다포의 장중함,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경향을 모두 볼 수 있는 듯 했다.
▲투어단 일행이 해설사로 부터 개암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투어단 일행을 안내한 전북 관광마켓팅 종합지원센터의 윤호숙 지도사는 "전북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백제의 문화와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서 "특히, 부안에는 알려 지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부안 전부가 백제의 유적지로 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꿔야 할 소중한 관광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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