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
모바일모드 | 로그인 | 회원가입
2018년06월22일fri
 
티커뉴스
OFF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국가사적지] 광해군의 생모, 공빈김씨 성묘
등록날짜 [ 2015년06월09일 18시27분 ]
 
 

- 역사는 공평하고 서로 공존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 공성왕후는 성묘(공빈김씨 묘)에서 광해군을 옆에 두고 도성을 바라보고 있다!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김씨(1553, 명종 8년 ~ 1577년, 선조 10)는 본관이 옥천인 김희철의 딸로 태어나 선조의 후궁이 되었으며, 1547년(선조 7) 임해군을 낳고, 그 다음 해인 1575년 광해군을 낳았다. 2년 후인 1577년 5월 11일 25세의 어린 나이에 승하했다.

부친 김희철은 무과에 급제한 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 휘하에서 비장으로 출전하여 금산 전투에서 왜적과 육박전이 벌어졌을 때 16인의 비장과 함께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했다.

광해군이 즉위 후 1610년(광해군 2)에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어머니를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로 삼고 전(殿)의 이름은 봉자(奉慈)라고 하였고, 능의 이름은 성릉(成陵)이라 했다. 그래서 석물을 모두 왕릉 수준으로 만들어 세웠다. 반정으로 인해 성묘로 격하되면서 능상 위에 있는 석물들은 그대로 두었다(관련기사:
경제와 국방을 등한시한 광해군).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공빈김씨의 유택이 법도에 어긋난다 하여 석물을 헐어버리도록 했다. 석물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반정세력 역시 묘역의 석물을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각이나 비각 등은 흔적이 없다.

묘역 시설로는 곡장, 봉분 주위의 난간석ㆍ석호ㆍ석양 등이 있으며, 봉분 전면에는 혼유석ㆍ장명등ㆍ망주석ㆍ문인석ㆍ무인석ㆍ석마 등이 있다. 비석은 남아 있지 않다. 봉분은 원형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다시 12면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양과 석호를 각 4쌍씩 번갈아 배치하였다. 봉분의 전방에 3단의 계체석을 조성하여 상계(上階)에는 혼유석과 좌우의 망주석을 배열하고, 중계(中階)에는 장명등, 그 좌우에 문인석과 석마 1쌍씩을 세웠고, 하계(下階)에는 좌우에 무인석과 석마 1쌍씩을 세웠다.  

성묘 앞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풍양조씨 시조이자 고려개국공신인 조맹 묘다. 성묘 앞에 왜 사가의 묘가 있을까? 성묘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조맹 묘는 이곳에 있었다. 공빈김씨가 죽자 선조는 최고의 묏자리를 이곳으로 정했으나 하필이면 조맹 묘가 이미 있었다. 왕가의 묘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사가의 묘는 이장되어야 했으나 선조가 반대하여 그대로 두게 되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죽은 생모의 묘를 성릉으로 승격하여 단장하면서 조맹 묘를 또 다시 이장하라는 명을 내렸다. 대신들이 알아보니 조맹은 공빈 김씨 외가의 조상이었다. 가까스로 이장은 면하고 봉분을 깎아 평평하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이후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자 성릉은 다시 성묘로 격하되었고 이후에 다시 봉분을 쌓고 비를 세웠다. 하나의 예이지만, 역사는 공평하고 서로 공존하게 만드는 방법을 후대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공빈김씨 묘(성묘, 사적 제365호).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소재.





하계에는 좌우측에 무인석과 석마를 1쌍씩 두었고, 중계에는 문인석과 석마를 1쌍씩 두었다.


문인석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 석마.







성묘 내의 무인석 앞면, 측면, 후면 모습. 왕릉에 준하는 정도로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칼자루에 귀면상을 새겨 넣었다.



칼집에도 문양을 수려하게 새겨 넣었다.




무인석 얼굴의 앞면과 측면. 아주 강인한 모습이다. 







문인석의 앞면, 측면, 후면.


장명등. 팔각형 면마다 화려하게 문양을 새겨 넣었다.





좌우측에서 바라본 성묘의 상계. 망주석, 혼유석, 고석, 석양, 석호, 난간석, 봉분이 배치되어 있다. 





공빈김씨 묘(성묘)의 좌우측 망주석. 팔각형 받침돌에 문양을 새겨 넣었고, 기둥 역시 팔각형이다.



고석 4개가 혼유석을 받치고 있다. 왕릉에서는 이를 '혼유석'이라 하고, 일반 묘에서는 '상석'이라 한다. 쉽게 이해하면, 혼유석은 방석이고, 상석은 밥상이다. 왕릉에서는 정자각 내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 탁자에 상을 진설하기 때문에, 이를 '상석'으로 불리고, 봉분 앞에 있는 것은 죽은 자의 혼이 나와서 노니는 곳으로 '혼유석'이라 불린다.  






조선 제3대 왕인 태종의 능인 헌릉 내의 정자각과 혼유석. 정자각 내의 탁자가 '상석'이고, 봉분 앞의 탁자가 혼유석이다. 헌릉의 가장 큰 특징은 정자각 좌측에 설치되어 있는 '소전대'(제례의 마지막 절차에서 위패를 불사르는 곳)와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이 5개라는 점이다. 고석을 받치고 있는 것이 배전석이라 하는데, 구멍이 나 있다. 이를 '태종우(太宗雨)'라 한다. 태종의 기일인 음력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백성들은 '태종우'라 불렀다.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역(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내의 정숙공 안순 묘의 상석과 혼유석.





공빈김씨 묘의 석양과 석호.




공빈김씨 묘의 난간석과 원형 호석.



후면에서 바라본 공빈김씨 묘(성묘).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그 너머 북한산도 보이지만 날이 흐리다. 앞에 조맹 묘가 보이는데, 좌우측에 묘표와 신도비가 있다.


 


조맹 묘표. '고려 개국공신 문하시중 조맹지묘(高麗開國功臣門下侍中趙孟之墓)'라 써 있다. 4면 비다.


조맹 신도비. 1632년에 장유가 짓고, 이현이 썼으며, 박이가 전자를 올렸다. 3면 비다.


고려개국공신 풍양조씨 시조, 조맹 묘.



THE KOREA NEWS




THE KOREA NEWS

<저작권자ⓒ THE KOREA 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권순삼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지역문화공간] 인천향교 (2015-06-10 01:09:07)
소방피복 공급업체 제재로 조달구매 차질 없도록 (2015-06-09 17:17:17)

아키에이지, '오키드나: 성장 ...
농촌지역 ‘여름 농촌여행코...
'고스톱2018', '멍투 에디션' 선...
넷마블게임소통교육 부모공감...
스낵게임 ‘클래시 로얄 프렌...
文대통령, 러시아 순방 위해 ...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톰 크...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