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인 그리고 민화를 통해 삶의 행복을 그린 황규림 작가의 개인전 '봄날의 수다'가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하성인 기자] 작가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가졌다.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인고(忍苦)의 시간을 갖는 동안 작가의 마음속에 든 꽃들은 모두 사라진 걸까.?
5번의 개인전을 거치는 동안 작가는 그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 자신에게 스며든 가족과 여인, 그리고 그들의 교집합을 통해서 우러나오는 그의 심성은 온통 '꽃'으로 우러 나오곤 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좀 다른 그림을 내걸면서 이름조차도 황치남에서 황규림으로 '봄날의 수다'展을 지난 8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아리수갤러리'에서 오픈했다.
기자는 작가와의 오랜 인연으로 그의 전시장을 찾아 대면한 그의 작품들은 낯섬. 그 자체였다. 그리고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와의 대화를 이어 갔다. 역시나 작가는 오랜 인고(忍苦)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마지막 그의 작품전을 본게, 7년전 쯤이였으니,..
옛말에 어린아이들이 한번 앓고 나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날 정도로 황 작가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픔속에서 황 작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나 예술적인 고뇌로 인하여 더 깊은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그가 추구해온 작품의 방향을 때론 무너뜨리고 꺼꾸로 메달고 뒤짚기를 무한 반복한 결과, 이제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같다며 특유의 웃음을 보였다.
▲황규림 작가의 전시장(사진=하성인기자)
아니나 다를까. 게임 체인지를 노린 그의 예술적인 영혼은 곧장 고통으로 혹사 당하고 있는 육체를 설득 회복의 길로 접어 들기 시작했단다.
다시 붓을 잡은 작가는 마음이 급했나보았다. 이번 전시에서 본 그의 작품은 그 동안 그가 추구하면서 교집합으로 찾아 낸 '꽃'과 여인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의 내적 충돌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한 작품들이 더러 더러 섞여 있다보니, 그의 말대로 그가 토해 내고자 하는 작품의 세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편모양을 하고 있었다.
▲오랜 고통을 이겨내었지만 여전히 작가의 가슴속에 있는 꽃과 여인 그리고 민화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 이들은 곧 자신의 엄마이자, 우리 모두의 행복한 이모가 아닐까 싶다(사진=하성인기자)
우선, 그는 오랜 기간동안 우리 민화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작가다. 예전 그의 작품 속에서도 표현의 기법은 민화를 닮은 듯하면서도 자유로움을 과감하게 드러 내 놓아 많은 이들로 부터 찬사를 받아 왔다.
그런 그의 민화적인 표현을 이번에는 그가 늘 가슴속에 담아 온 작가의 엄마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어머니의 젊은 모습을 행복하게 담았다. 이제는 환갑이라는 나이를 넘겨 작가 자신도 할머니 세대로 접어들시기지만, 작가의 가슴속에서 품어 온 엄마는 여전히 처녀적 웃음과 행복을 담고 있다.
이는 마치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이 추구하는 행복한 여성을 황 작가의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는 엄마를 통해서 조심히 꺼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작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자 동료이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는 우리들이라고 한다.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에 대한 열정은 병실에 누운 그에게 그의 작품관을 뒤 흔들어 놓은 뒤에 찾은 소품의 추상화는 그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를 어렴풋이 이야기 해 주는 듯...(사진=하성인기자)
또한, 그가 병실에 누워서 바라보는 바깥 세상은 또 다른 하나의 캔퍼스로 다가 왔다고 한다. 그런 세상을 퇴원하자 마자 오래 담아 두기 위해 급히 소품으로 만든 작품이 예사롭지가 않다.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감내한 뒤에 찾아온 걸까? 병실에 누워 자기 자신을 찾은 작가의 순수한 정신성을 절제된 그림언어로 표현된, 어쩌면 작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갑자기 뛰어 넘는 초현실주의적인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승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병실에서 육체가 느낀 세계 만큼 황작가의 이번 작품은 느리다. 아니 느리게 감상해야 할 작품으로 작은 화면에 꾸며진 사각의 경계속에는 고요하고 차분하며 정적이고 때론 차분하며 명상적이기도 한 색의 변주 앞에서 기자의 시선은 깊이 빠져 들었다.
기자의 시선을 깊이 빨아 들이는 작품은 그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한지(韓紙)를 이용 주름을 잡아 울타리를 만들어 그 속에 작은 세상을 담았다. 그리고 작가는 그 작은 공간에 숱한 상형문자로 생명을 그렸다. 아마도 그가 말하고 싶은 세상의 언어를 전부 다 담을 듯~! 단색이 주는 편안한 시선까지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느리게 본다면 그가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다.
▲육체적인 고통으로 작가는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심연이였을까.? 보일 듯한 말듯한 단조로운 색감의 작품은 마치 작가 자신이 주변색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작품(사진=하성인기자)
길고 긴 시간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작가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는지 기자의 시선을 끈 또 다른 작품이 반기고 있다.
보일 듯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알수 있는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황 작가 자신의 심상을 그대로 담아 놓은 듯한 작품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다.
힘들었나 보다. 아니면 천성(天性)이 드러내 놓고 살아야하는 성격이 아니여서 그런가? 작가는 그의 작품속에 숨고 싶어 했다. 숱한 생존 경쟁속에 있는 밀림의 생물들처럼 작가는 주변색(보호색)으로 자신을 치장한 다음, 조용히 살고 싶은 욕망을 조심스럽게 작품으로 표현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그리고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작가는 작가 자신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거침없는 작품들을 토해 내었다.
귀중한 시간을 통해서 찾아낸 정적인 보물을 작가에게는 다듬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만나게 될 그의 작품들이 사뭇 기대가 된다.
▲엄마와 같이 전시를 하게 되어 몹시 조심스럽다는 손초언 작가(사진=하성인기자)
또한, 이번 전시는 특별하게 그와 같은 길을 가려는 그의 딸 작품이 전시장 한켠에 마련되어 있다. 예술적인 생태계를 이어 가려는 듯, 엄마의 길을 답습하되 또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예비 작가 손초언의 첫 전시다.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역시나 피는 못 속인다고 해야 하나? 당차게 시작하는 손초언 작가의 작품 역시 세대를 달리하여 일러스트를 전공한 작가 답게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전시장 한켠을 채우고 있다.
손초언은 부산 동서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재학 중 부산미술대전에서 특선과 그룹전에도 다수 참가하여 주의로 부터 일찍이 끼있는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그의 전시는 엄마인 황규림 작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세대를 이어서 작가의 길로 접어 들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의 주제인 '봄날의 수다'는 아마도 엄마와 딸의 정겨운 인사동 수다가 아닐까 하는데, 알고 보면 황규림 작가의 동생 황치석 작가는 전통기법 그대로 의궤도를 완성한 궁중장식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봄날의 수다'는 세 여자가 모여 그림 한상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수다가 아닐까 싶다.
황규림 작가는 현재는 부산에서 활동 중이며, BFAA국제 아트페어를 비롯해서 부산현대 한국화 23인전과 광화문 르네상스展 등 20여 그룹전에 참여 했으며, 지금까지 여섯번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졌다.
하성인기자 press0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