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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곳-정읍
등록날짜 [ 2022년05월05일 02시01분 ]
 동학혁명-승자의 기록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 모두의 기록으로 남겨 지길~
 

▲지난 4월말 전북관광종합마케팅센터 주관으로 정읍역사명소 홍보를 위한 여행기자.블로거 팸투어가 열린 가운데, 동학농민혁명군의 승전지인 황토현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다(사진=전북관광종합마케팅센터)


[더코리아뉴스] 하성인 기자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
♪♪ 녹두꽃이 떨어지면~! ♬ 청포장수 울고 간다~♪♬


적당하게 나이를 드신 분들이라면, 무척이나 귀에 익은 노래일련지도 모른다.
어릴적에는 이게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알수는 없었어도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을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녹두'는 녹두장군을 말하며, 녹두장군은 바로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의 별명으로 불렸는데,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지 128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읍의 역사 중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며, 아울러 동학농민들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의 고택으로 이곳에서는 고부봉기를 일으키기 5-6전부터 살면서 서당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사진=하성인기자)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동학농민혁명 역시 승자의 기록이라고 해야하나.? 그 동안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대 놓고 말못할 사정이 많았다.

동학농민혁명이 양반 계급에 대한 분노로 궐기하였다가 살아남은 자들은 양반이였고, 이들은 암암리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는 입에도 담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 4월 말, 전북관광종합마케팅지원센터(센터장 선윤숙)의 주관으로 여행기자, 여행작가, 블로거를 대상으로 정읍역사탐방 팸투어가 1박2일간 진행되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 정읍천과 동진강을 막아 농민들에게 물세를 받았다는 만석보터에서 (사진=하성인기자)

전국에서 찾아온 팸투어 일행은 정읍역에 도착하여 근래 한국의 서원 9개가 동시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중의 한 곳인 '무성서원'은 신라 후기의 학자 고운 최치원(崔致遠)선생이 8년간 선정을 베푼곳으로 최치원선생이 떠나자 마을 주민들이 생사당인 태산사를 만든 곳이다.

▲사방을 둘러 보아 높은 산이라곤 보이지 않는 이곳에 만들어진 만석보 쉼터. 이 야트막한 곳에 오르고 보니 사방이 툭 트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남다른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사진은 일행들이 정읍천과 동진강을 사이에 두고 사진찍기에 몰두하고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이후 조선 중종때의 관리였던 신잠(申潛)의 위패를 같이 모시게 되면서 조선  숙종 때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 사액(賜額)을 받은 곳으로 이후 1630년(인조 8) 정극인(丁克仁)·송세림(宋世琳)·정언충(鄭彦忠)·김약묵(金若默)과 1675년(숙종 1) 김관(金灌)을 추가 배향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라면 시야가 툭트여 점프샷이라도 찍는다면..? 강 위를 날으는 기분쯤은 되지 않을까싶다(사진=하성인기자)

 
이곳에서는 주로 유학 중에서도 특히 성리학을 공부하는데 힘썼는데, 《격몽요결》, 《소학》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읽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입학 기준에 있어 나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독서에 뜻이 있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모두 허락하였지만 일단 입학하게 되면 반드시 용모를 단정히 하고 오로지 정신을 통일하여 의리를 깨우침에 힘쓰며 서로 돌아보고 잡담하지 말 것을 엄격히 강조하였다고 한다.

▲동학혁명기념관내에서 해설사로 부터 동학혁명에 대한 설명을 듣는 팸투어 일행들. 뒷쪽의 감나무는 말목장터에 서 있던 감나무로 몇년전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사진=하성인기자)

 
이어서 동학농민혁명의 주인공 전봉준 녹두장군을 만나러 가기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고택을 잠시 들렀다.

이 고택은 원래 고부농민보익 때 안핵사 이용태에 의해 불에 타 없어졌으나 1974년 해체 작업 당시 상량문이 발견되어 조선 고종 15년(1878년)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전봉준 장군은 이곳에서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나기 5-6년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와 훈장생활을 하면서 농민봉기를 일으킬때까지 거주했다고 한다.

원래 녹두장군 전봉준은 조선 철종 6년(1855) 출생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창군 죽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자는 명숙(明淑)이고, 호는 해몽(海夢)이며, 신체가 작고 왜소하여 '녹두'라 불리다가 이후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사발을 뒤집어서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이름을 둘러가며 적은 통문으로 1894년 1월 고부 농민 봉기 때 참가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전봉준 장군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게 된 계기로는 아버지 전창혁이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포악함에 저항하다가 곤장을 맞고 죽음을 맞이 한 뒤, 훗날 동학에 입교하면서 경천수심(敬天守心)의 도(道)로, 충효를 근본으로 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위한다는 뜻을 깨달아, 동학을 사회 개혁의 지도 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이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조병갑의 탐욕과 학정으로 농민들을 규합하여 1894년 정월 1,000여명의 농민들과 봉기하여 고부 관아를 습격 무기고를 파괴, 무장하여 온갖 불법과 학정으로 빼앗긴 세곡(稅穀)을 창고에서 꺼내 농민들에게 돌려 주었다.

▲최근 국가사업으로 조성중인 동학놈민혁명기념공원 내에 설치된 '울림의 기둥'은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히 전라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임을 증명이나 하는 듯, 전국 각지의 농민 운동에 대한 조형탑이 설치되어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이것을 '고부민란'이라고 하며, 이를 계기로 몰려든 동학농민군들과 함께 황토현전투를 필두로 정읍, 흥덕, 고창을 거쳐 영광, 함평, 무안 일대를 진격, 당시 한양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전주성을 점령하게 되었지만, 당시 국내 조정의 정세를 비추어 볼때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 다툼 속에서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공주 우금치(牛金峙)싸움에서 대패하여 정읍에서 숨어 지내던 중 자신의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12월 2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재판 후 곧장 교수형에 처해 졌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봉준 장군의 이미지는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가마에 실려가면서 찍힌 한장의 사진인 것이다.

▲동학농민기념관은 동학농민군들이 관군들과의 첫 전투에서 승리한 황토현 전적지가 잇는 곳에 세워져 그 의의가 크다고 볼수 있다(사진=하성인기자)

 
전봉준 장군의 고택을 나와 고부 군수 조병갑이 정읍천과 동진강의 물길을 막아 농민들로부터 물세까지 고리로 받아 물의를 일으킨 '만석보'가 있던 곳이 지금은 쉼터로 조성된 곳을 둘러 봤다.

사방을 둘러보아 높은 산이라고 찾아 볼수없을 만큼 넓은 평야에서 수확되는 쌀은 조병갑의 탐욕에 이어 일본인들에 의해 수탈되었다고 하니 이 땅에 살아온 농민들의 한(恨)이 이곳 저곳 어느 한군데 빠짐없이 알알이 맺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착찹한 마음을 달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다른 곳은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1894년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봉기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수만의 무명동학농민군이 전주감영에서 파견한 관군을 크게 이긴 최초의 전승지인 황토현 전전지내에 희생자 추모시설을 비롯해서 연수시설, 전시 체험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기념공원 내에 조성되고 있는 조형물로 일본군과 러시아군 그리고 관군과 맞선 동학농민들의 주무기인 대나무를 소재로 한 조형물이라고 한다(사진=하성인기자)

 
최근에는 국가사업으로 격상하여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관계로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있었다. 오는 5월 11일에는 대규모 동학농민혁명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면적 306,428㎡ (건축 연면적 4,719㎡)의 이곳 공원에는 앞으로 연구소 226㎡, 유물관 및 체험관 1,262㎡, 추모관 226㎡, 연수동 2,416㎡(2인ㆍ4인ㆍ8인실), 편의시설(방문자센터, 카페테리아, 야외캠핑장 등)589㎡ 이 들어설 예정인데, 공원의 넓이가 엄청나 하루 종일 둘러 봐야 할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유채꽃을 비롯해서 온갖 봄꽃들이 핀 공원은 지금의 모습 이대로여도 괜찮을 듯 싶은 생각을 하면서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상황이 마치 눈 앞에 전개되는 듯, 예나 지금이나 가진자들의 탐욕과 서양 열강의 침략 앞에 힘없는 농민들이 오죽했으면 농기구 대신 죽창들고 백산으로 모였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되돌아 나왔다.

▲공원으로 조성 중인 곳으로 유채꽃을 비롯해서 봄꽂들이 흐드러지게 핀 것은 이 땅을 피로서 지킨 동학농민들의 찐한 웃음이 아닐까 싶다(사진=하성인기자)

 
땅을 파면 물이 고여 농사 짓기에 참 좋았을까? 그래서 우물정자(井)자에 고을읍(邑)자를 써서 '정읍(井邑)이라 불리는 곳.

사람이 살기에 첫번째 조건이 물(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먼먼 옛날 원시시대 때 부터 깨달은 이치가 아니든가? 그런 사람살기 좋은 곳-정읍에는 갑오년에 농민들이 살기 위해서 피를 흘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정읍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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